280랠리 지원조 참여 후기 제2부

제 2부

6/28/08 토 저녁 (누적거리: 140 KM, 랠리 포인트 23, 제3 지원 포인트 날씨: 계속 비)

제2 지원 포인트인 원두막에서 철수 이번에는 저녁장소로 이동한다. 식량이랑 솥단지를 짊어진 영락없는 피난민 내지는 유목민 생활이다. 제2 포인트에서 후미조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지체되자 소장님께서 저녁지원 포인트에 선발대를 보내기로 결정하신다. 정찰 및 2차 지원 포인트 교두보 확보 목적의 선발대는 이창선님 부부.

도착하니 벌써 오르막 도로 옆 밭 가운데 호젓한 자리에 천막이 한 동 서 있다. 그리고 큼직한 가스버너 위에 오른 들통에는 물이 넉넉히 데워진다. 사방이 훤한 천막이라 비바람 통풍이 지나치게 잘 된다. 서둘러 돗자리를 깔고 비를 피해 천막 가운데로 단칸방 흥부네 식구마냥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먹음직한 쇠고기 깍두기를 듬뿍 넣고 각종 야채와 양념을 아끼지 않는다. 맛난 냄새가 회를 동하게 하는 차, 고구마 밭두렁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쫄짜의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선수들이 오자면 아직 한참 남은 듯. 차에서 눈을 붙여 보려 하지만 눅눅하고 어쩐지 잠이 오지 않는다. 꽤 뒤척이다 일어나서 다시 천막으로 간다.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8기생 전준열님께서 부부동반으로 원로에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과일은 한 아름 들고 응원 오셨다. 덕분에 지친 지원조도 다시 활기가 돈다.

그 즈음 배고프고 젖은 우리들에게 잘 익은 육개장 냄새의 유혹은 견디기 힘들다. 다들 모여서 선수들에게 먹일 만한지 단지 맛만 한번 보기로 했다. 맛이 좋다! 이번엔 선수들이 많이 먹어도 탈이 날지 안 날지 알아야 한다. 대접에다 한 그릇씩 담아서 또 먹어본다. 괜찮다! 식은 햇반을 말아 먹으면 과연 어떤지가 또 궁금하다. 좋다! 마침 이창선님이 구해 온 제천막걸리가 한 순배 돈다. 전통 유산균음료의 대명사 아닌가? 배알이 낫는 약으로 꼭 내가 많이 먹어야 한다.

이윽고 A조 4명의 선수들이 오르막 도로 아래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자칭 타칭 스테파네트 아가씨(통반장님)가 낭군님인 선수 배준철님을 부르며 달려 내려가신다. 아름다운 해후가 사뭇 감동적이다. 단지 몇 시간 서로 헤어져 있었건만 노심초사 걱정이 많이 되셨나 보다. 그 조금 전에 통반장님이 애먼 남정네 라이더를 남편인 줄 알고 맞으러 달려 나가셨다 머쓱해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없으시다. 대단한 체력훈련과 준비의 결과일 것이다. 잘 준비하는 자만이 높은 목표를 이룰 수 있으리라. 280랠리의 성공 조건은 준비가 반 이상일 듯하다.  

몇 시간 동안 빗속을 강행군 하느라 모두들 체온저하에 따른 체력저하가 상당할 것이다.  온몸이 젖고 으슬으슬 축축한 가운데 칼칼한 목젖을 타고 넘어가 심장에 온기를 지피는 뜨거운 국물. 지금 이곳, 이 분위기, 이 구원의 맛을 다른 곳에서 어찌 구하랴.

원기를 회복한 A조는 라이트를 장착하고 보급품을 챙겨 제4 지원 포인트를 기약하며 서둘러 떠난다.

이후 긴 기다림이 이어진다. 통반장님, 이동희님 때문에 그다지 많이 무료하지는 않다. 넘치는 재기의 발랄함과 사람을 대하는 천성적인 따뜻함. 두 분을 더 많이 알면서 서서히 팬이 되어간다.

슬슬 걱정이 된다. 선두조가 떠난 지 2시간이 어언 지나는데 C, D조는 물론 B조 장인상님도 나타나지 않는다. 장비고장? 탈진? 사고? 나폴레옹? 불안하다. 그러고도 한참 후 알샵 멋쟁이 장인상님이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오신다. 그런데 안색이 창백하다. 그리고 이내 남은 일정을 접는다 한다. 아무 말도 못한다. 그냥 어깨만 조용히 두드려준다.

그리고 또 한참 후 C조 중 ‘빨간 바지’ 이승상, 권미래, 장은영 선수가 도착한다. 예감에 정운양씨는 아무래도 낙오한 듯하다. 세 선수가 몰골이 말이 아니다. 우리 팀의 유일한 여자 출전자 권미래씨는 흙받이를 잊고 달지 않은 탁에 흙탕물을 온 전신에 뒤집어썼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논물 배수로에서 흙물을 씻어 내는 모양이 너무 측은하다. 우여곡절 끝에 보급을 마친 C조가 떠난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땅거미가 내린다. 이창선님 부부께 나머지 세 분, 정운양 신응섭 성록 선수를 부탁하고 우리는 선두조 지원 때문에 제4 지원 포인트 덕동계곡 입구로 급히 향한다. 아이들이 있는 정용채님 가족은 민박집으로 귀환.
앞장 선 소장님이 마음이 급하신가 보다. 쌩 하고 순식간에 달려 나가신다. 맨 뒤에 선 나는 어영부영 따라가다가 일행을 놓친다. 덕분에 박달재 터널을 지나 거의 제천 시내 입구까지 가야 한다. 예쁜 네비야, 우리를 덕동계곡으로 데려다 다오!

6/28/08 토 밤 (누적거리: 184 KM, 랠리 포인트 28, 덕동계곡 삼거리 제4 지원 포인트, 날씨: 그칠 줄 모르는 비)

6시경 덕동계곡 입구 삼거리 ‘고향산천’이라는 24시간 추어탕 식당 겸 미니슈퍼 앞에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좁다란 남의 집 처마 밑에 흥부네 물어다 줄 박씨를 잃어버린 제비들 마냥 옹색하게 모여 있다. 그래도 명색이 지원 캠프인데 좀 궁상맞다. 그나마 좁아서 교대로 우산 받고 질척한 마당에 서서 학수고대 선수를 기다린다. 소장님이 예상도착시간을 항상 꿰고 계시기는 하지만 변수까지 참작 늘 여유 있게 먼저 지원 포인트에 도착하려 한다. 여유가 넉넉할수록 우리의 기다림은 더 길다.

따뜻한 잠자리를 떠난 지 금요일 새벽 5시부터 지금까지 근 37시간이 되었다. 머리가 멍하다. 이때부터는 뭐가 먼저였는지 나중이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그 와중에 제4 포인트를 정리하고 이창선님이 랠리를 접으신 정운양, 신응섭 선수와 잔차를 싣고 도착한다. 모두 고생 많이 하셨다.

다리 앞에 나가서 불빛만 보면 목을 길게 빼던 신정건님과 내 눈에 8시경 드디어 4인방, R# 4대 천왕(^^)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보인다. 뭐라고 말하기가 구차하다. 감동이다.

추위에 다소 지친듯하지만 아직 모두 쌩쌩하시다. 선수들이 추어탕으로 저녁을 하는 동안 나랑 정건씨는 예의 체인 기름치기와 날라리 정비를 한다. 이번 코스는 악명 높은 백운산 싱글 코스가 속해 있어서 지원대장님이나 선수들이나 더욱 긴장하고 조바심을 낸다. 다음날 아침 5시까지만 제5 지원 포인트인 운학리 민박집에 도착하면 여유 있게 랠리에 성공할 수 있다 한다. 모두 허락하는 대로 젖은 옷을 갈아입고 우중 라이딩 준비를 단단히 한 후 9시에 다시 출발. ‘안전 라이딩’을 뒤에 대고 외쳐본다.  

다음조의 예상도착시간은 익일 새벽 1시. 상경하시는 전준열님 차편에 장인상씨, 신응섭씨, 정운양씨, 김형섭씨를 모산 비행장까지 부탁드린다. 전준열님 부부와 하루 종일 애쓰신 김형섭님은 귀가하고 장인상님은 민박집으로 조기 철수 예정이다. 많이 지치신 통반장님과 이동희님은 신정건님 차로 숙소 복귀하신다. 거기서도 일 때문에 아마 편히 쉬시지 못하리라. 이창선님도 이제야 댁으로 복귀하신다.

이제 김소장님과 나 포함 쫄병 두 명만 남았다. 지원조는 이 세 명으로 오늘밤 여기서 남은 임무를 완수하여야 한다. 선수들에게도 이 지원 포인트의 보급-정비와 이어지는 덕동-용두재-백운산 코스 돌파가 이번 랠리의 최대고비가 될 것이다.
기다릴 때는 시간은 많으나 기다림 외에 딱히 할 일은 없다. 자정이 넘어도 다음선수는 올 기미가 없다. 김소장님이 마중 가자 하신다. 랠리 루트를 한참이나 거슬러 임도 입구까지 가서 기다려도 올 기미가 전혀 없다.

소장님 가라사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보자.” 정의감과 의리, 남자다움이 철철 넘쳐흐르는 대장님. 내가 존경하는 분이시다. (딸랑딸랑♬)  

학수고대 끝에 어둠 속에서 드디어 이승상, 권미래, 장은영 선수가 나타난다. 그 뒤에 떨어진 성록씨 때문에 조금 더 지체하다 제4 캠프로 복귀한다. 세 선수 많이 힘들어 보인다. 장은영님은 아쉬운 포기의사를 내비치고 나머지 두 분은 계속 가신단다. 하지만 너무 추위에 지친 나머지 더운물 샤워가 먼저 간절하시다 한다.

쫄병한테 시켜도 되는데 ‘소장님 소장님 우리 소장님’께서 냉큼 두 사람을 차에 태워 민박집으로 향하신다. 잠시 후 신정건씨랑 나랑 그제야 배고픔을 느낀다. 가겟집에 쭈그리고 앉아 사발면을 넘기는데 소장님 생각이 난다. 아차, 소장님도 아무것도 안 드셨는데. 못 챙겨 드려서 죄송하다.  

불현듯 항상 무한히 너그러우신 MTB 스쿨 이봉우 교장선생님과 늘 포근한 미소의 사모님 생각이 난다. 지금 제천에 함께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라면 한 그릇에 이래저래 주책이 꾸역꾸역 밀려온다.
  
마지막 선수 성록씨가 새벽 3시경인가 도착한다. 저녁 먹고 심사숙고하다 이윽고 포기하신다 한다. 우리가 지원한 선수가 포기할 때마다 너무나 안타깝다. 하지만 무리하다 다치는 것보다는 무조건 낫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샤워랑 옷 갈아입으러 가신 이승상, 권미래님 잔차 지켜야 되는데 너무 졸리다. 보초가 졸면 안 되는데. 비몽사몽 차에서 염치 불구 잠시 눈을 붙인다. 신정건님 인기척에 눈을 뜨니 에구 30분도 안 잤는데.

벌써 두 선수 공격 준비 끝났단다. 시간은 새벽 3시 40분 정도. 김소장님은 두 사람에게 루트공략 시간표를 단단히 이르신다. 유사시 철수 전략도 꼼꼼히 세워 주신다.  

빗속의 연인 아니 빗속의 두 선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아스라이 달려 나간다.

(제 2부 끝 / 3부에서 계속)

12 thoughts on “280랠리 지원조 참여 후기 제2부

  1. 오늘밤도 그날처럼 비가오네요…
    작은어깨의 권미래선생이 산으로 들어가는모습이 아련합니다…

    컵라면 맛있었는데..그초?..ㅎ

  2. 휴먼드라마 한 편을 읽는 찡한 느낌입니다. 굵은 빗속의 라이딩도 앞으로 우리가 회피할 대상이 아닌 적극 대처할 사항이고 평소 여럿이 라이딩 하면서 이런 상황을 격어봐야 다음 280을 위한 폭우속 라이딩 준비(체온 저하 방지 의류 준비)도 철저히 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의 알샵 라이딩은 굵은 비가 쏟아져도 그냥 “시원해서 좋네”하면서 라이딩할 수 있는 경지까지 올려놓을 것임. 계절적으로 280랠리는 폭염 아니면 폭우, 이 두 넘에 대한 순응 여하에 따라 랠리 성공 여부가 있음을 참가 예정자 분들은 깊이 각인시켜놓으시길 바랍니다.

  3. 3부도 올려주세요. 기대기대기대~~샤방 *_*
    남자분들이야 그렇다해도 권미래 선생님의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280전 사전 훈련으로 야간 도토리 돌 때 그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4. 눈물이 날라구 합니다.
    교장님 말씀대로 폭염과 폭우, 두가지가 다 280랠리의 변수죠.
    한낮 지글지글 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업힐을 하다보면 차라리 비나 시원하게 와라 하지만
    또 내리는 빗속에 진흙뻘에 발이 푹푹 빠지다 보면 제발 비좀 그쳐라 하니…..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긴 해요. 그쵸?^^
    그 긴 기다림을 인내하면서 지원해 주신 모든 분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5. 캬~~~
    선수들을 위해 먼저 몸을 마루타삼아 시식했다는 장면에서, 찡한 감동의 휴먼드라마에 코끝이 아려옵니다.ㅠㅜ

  6. 2부로 아직 끝이 안났는데 3부가 예정이 없다니요.
    알샵 식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예정에 없던 3부가 올라오기를 기대합니다.^^

  7. 잠도 제대로 못주무시고..
    얼마나 애쓰셨을지..

    그러면서도 지원포인트에 들어서면 지원조분들 항상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고 계셨죠..
    서로가 걱정하고 아끼고 격려하고..
    그런 애정어린 맘을 가슴에 깊숙히 품고서야 완주가 가능했습니다.
    다시 또 봐도 유려한 글에 녹아듭니다.

    지원조 넘 고생많았습니다..ㅠㅠ

  8. 덕동계곡으로 출발할 때가 생각납니다
    잠도 못주무시고 화이팅 하면서 끝까지 지켜보시는데 울컥했습니다^^

  9. 장은x님과 김소x씨의 피니쉬라인에서의 대화
    (실제상황입니다)

    장xx님; 아,… 내가 좀더 알샵을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20대에만 대회에 출전했다면 1등은 내것인데..우쒸….
    내년엔 꼭 빡조에 편입되서 꼭,기필코 완주하고 말테야!!!
    아휴… 아휴….. (주먹을 꼭 쥔다!!)

    김xx씨: 장은x님.. 그 맘 제가 잘 알아요..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세요..
    저도..
    ….. 20대때 미스코리아대회가 있는줄 알았으면 “진”은 따논당상이었는데..
    …….. 정말 억울해요,억울하다니까요…. (주먹을쥐고 가슴을 마구 뚜드린다)

    곁에있던 알샵의 횐님들; @#$%^&@#$

    남들이 모라거나 말거나..랄라룰루~~~
    그래도 장은영님은 저보단 덜 억울한거예요.내년에 나가시면 되자나여.
    전 나이제한에 걸려서 미스코리아에 원서도 못내거든요.. 아이,억울해.. ^^

  10. 위의 그 대화… 제가 바로 현장에서 들었습니다..
    두분은 엄청 진지하셨는데…모라고 말을 거들어야 할지 몰라서….
    슬쩍 자리를 떴습니다…

    모든 분들이 저와 같았는지~ 주변엔 어느새 아무더 없더라는거..ㅋㅋ~

  11. 소화공주님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기혼녀들도 출전할수있는 대회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한번 도전해보세용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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