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8] 280단상

내가 가는 이길이

지옥문을 여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작년 아산 280랠리

 

랠리 초반부터 쏫아지는 비는 경기내내 내렸다.

저녁부터는 이것이 태풍과 어울려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추광리 임도의 기다란 수풀은 힘도 없는 몸에 진을 빼놓았고..

어스름 저녁이 되어

맥없이 넘어간 명곡리 임도의 진흙절벽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누구는 넘고 못넘은자는 포기해야 하고.. 젠장.

그냥 가망성도 없어 보이는 진흙절벽을 죽기살기로 기어 올라 넘어야

구계리로 가는 문이 겨우 열렸다..

 

구계.. 예전 번창했다가 끔찍하게 멸망한 네팔 어느구석의 불교왕국의 이름이 떠오른다.

 

벌통이 즐비한 구계리 긴임도를 파트너인 원식이도 잃어 버리고

태풍속에서 홀로 넘어간 국사봉 싱글..

비바람이 몰아치는 칠흙같은 진흙구덩이 싱글길을

얼어 죽지 않으려고..

심장과 허벅지가 터져라 끌고 메고 홀로 쉬지 않고 갔다..

 

그 끔찍한 싱글에서 탈출하는 길고긴 급사면 진흙길은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절망과 공포의 미끄럼틀이었다..

맨몸으로는 내려올 수 없고 자전거를 스틱삼아 한발한발 끝도 없이 내려간 길..

임도로 나오는 출구에서는 진흙절벽에 몸을 던져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곳을 빠져 나오고도 내 뒤에 올 수많은 도전자들의 고통에 몸서리가 쳐졌다.

 

절망이라는 단어를 몇번 외치고 싶었지만 혼자인지라 들어줄 이도 없었고

 

추위를 피해 새벽 임도가의 포크레인속에서 잠을 청하고 나서..

얼어서 새파란 입으로 체온을 올리기 위해 기를 쓰고

새벽의 정안면으로 넘어가야 했던 기나긴 임도의 기억을 떠올리면

세상에 무엇이 이것보다 끔직할지 쉬이 상상되지 않는다..

 

몸은 이미 극한을 넘었음에도

몸이 그때를 자각하지 못했음을 랠리가 끝나고서야 알게된 지금..

내가 한계를 극복한 것이 아니고 내가 느끼지 못했다는 공포가..

다시금 두렵기만 하다.

 

작년 랠리직후 2주일동안 온갖 피로 휴유증으로 시달리고서야..

올해에 280이 다가오는 것이 점점 두려워 지기 시작했었다..

 

예전에도 뚜렸한 그 고통들

제천 280때의 백운산 지옥 싱글길..

정선 280때의 사북으로 넘어가는 싱글.. 끝도 없는 절망의 끌바들..

정선랠리 마지막 병방치 깔딱 콘크리트 포장로의 절망감..

랠리후에 젖어서 퉁퉁불은 발바닥이 갈라지면서 걷지도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던 기억..

 

땅바닥만 바라보고 끌고.. 또 끌고..

아.. 놔.. 내가 왜 다시 나를 같은 고통속으로 밀어 놓고 있는지..

지껄이고 있는 나도 모르겠다.. 정말..

 

내일이면 다시 평창으로 그길을 떠나는 나를 상상해 보니

다음에는 어떤 후회를 다시 하고 있을런지..

 

결국 모든 것이

살아 있는 동안 가야할 길임을 너무도 잘알기 때문이 아닐지..

 

혼자 읖조려 본다.

 

올해는 왠지 심사가 복잡하여 끄적여 봅니다..

잔차도 점점 힘들다는 생각이 요즘들어 부쩍 생기네요..헐

자전거
인생
2004년부터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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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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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걷는 이 길이 나의 선택으로 주어진 나만 느낄 수
    있는 나의 길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이 험하고도 힘든 이 길을 지금 감사하며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배사부님의 길을 곁에서 응원하지 못함을
    용서하시고, 마음만으로라도 힘차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리오니 이번에도 욕심과 자만을 내려놓고 선택하신 그 길을 잘 헤쳐나가시기를 바랍니다.
    ^^

  • 2012/06/28 21:52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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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하시는 분들 힘뺄려고 쓴글이 되어 버렸네요..

    도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시구요..

    목사님 말대로 내려놓고 잘 다녀 오겠습니다..

    요며칠 연습을 과도하게
    했더니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도전에 대한 포스가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제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지금도
    삭신이 쑤십니다..
    연습하는 제자신이 무섭게 느껴지더라구요..ㅎㅎ

    말씀 감사합니다.

  • 부모님이 280랠리 출전하라고 하면 할까? 지가 좋아서
    하는 거지. My Way.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 랠리 성공만을 위한 마인드 컨트롤을 하세요.

  • 배사부님의 글을 보니 이거 비까지 온다는데 애당초 도전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래도 도전해보겠습니다. 처음이라 40시간이 걸려서 완주만 해도 성공입니다. 같이 가는 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 제천280, 정선280,아산280 그 끔직했던 순간들을
    형님과 함께 했었네요 특히 작년 아산때는 형님과 헤어진후 혼자 넘던 임도 싱글길이 아득하게 떠오릅니다 어 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기억입니다
    힘들었지만 되돌아보면 참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네요^^ 올해도 도전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 mtb 라는 걸 알게되고 여기저기 둘러보다 280 이라는걸
    봤는데 왜 저런 일을 하나 하면서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지금 출발 전날까지 왔습니다.
    몸도 마음도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두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이미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닌것 같습니다. 팀이 있고 봉사해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어쨌든 출발은
    할거고 그다음은 무사히 돌아오도록 최선을 다해야 겠죠.
    다행히 일요일은 비를 안맞을것 같습니다.
    모두 평창에서 뵙겠습니다.

  • 비장하십니다. 날씨가 좋기를
    기대합니다

  • 2012/06/29 13:15 답글

    수정|삭제

    호의호식이 전부는 아니라
    쓰고 고통스런
    삶이
    살아가는 든든한 밑천임을 우리는 잘 알지요..

    매년마다..
    돈주고 사서 하는 고생..
    자청해서 간다는 그사실에
    가슴이 뜁니다.

  • 배사부님,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280,
    멀리서 마음만으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응원 없어도 묵묵히 잘 타시겠지만 완주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올해는 시작부터 비가
    온다니 단디 준비해야 겠습니다.
    아무쪼록 무사히 완주하시고 즐라하시길..
    아자 아자!! 홧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