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것

어제는 빗속에 280랠리 코스를 답사했다.
땀과 빗물, 튀어 오르는 진흙에 범벅이 됐다.

가슴이 터질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매월임도의 터널 정상을 오르는 중 메세지 신호가 울린다.
정상에 올라 고래산 중턱에 검게 내려앉은 하늘을 바라보며 그 하늘만큼이나 어두운 얘기를 전해 들었다.

같은 세월을 살아오다 불과 서너시간 전 황망히 떠나 간 동년배의 이야기이다.
나이 든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시간 아무도 말이 없다.
틀림없이 여기에 들릴텐데도 말이다.

침묵이 너무 무겁다.
무슨 말이든 건네고 싶다.

지나간 얘기라도 해 보련다.

지난 일요일에(5/17) 메리다컵 산악자전거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였다.
나이 든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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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참가자들의 후기를 보니 모두 풀코스를 완주한 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난들 왜 풀코스를 뛰고 싶지 않겠는가?
이왕이면 레이싱으로…..

완주하지 못한 분이나 하프를 뛴 분들도 나름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하프 60km에 참가한 나의 이야기이다.

1. 계기

3월초, 금년 시즌 첫 라이딩을 춘천 계관산에서 시작하였다.
해동기의 임도라서 질척이기도 했지만 내내 뒷 꽁무니만 따라 다니다 왔다.

겨우내 스키를 타서 근력이 좀 붙은 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에 전혀 못 미치는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였다.
이제는 근육이 빠지고 운동 후에도 체력이 축적되지 않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젊은 시절과 다른 변화이다.
내가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어쩔 수없이 인정하게 된다.

앞으로 홍천알샾의 주말 라이딩도 따라 다니기 힘들게 생겼다.
잔차를 포기하든가 무슨 대비를 하여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산뽕의 묘미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포기하기는 좀 억울하다.

오디랠리가 메리다컵대회로 부활된다는 이야기를 4월초에 듣는다.
코스를 보니 대부분 지난 몇 년간 라이딩하며 친숙한 곳이다.
나에겐 동네 뒷산인 셈이다.

참가해 볼까?
이 참에 체력을 길러 볼까?
일단 주말 라이딩을 하며 몸 상태를 보기로 했다.

2. 준비

요즈음엔 빡세게 타면 쉽게 퍼져버린다.
회복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내 몸이 왜 이러지 하며 때로는 믿지기 않을 때도 있다.
종합건강검진 결과에도 특별히 이상은 없다.
상담해 보니 나이들어 가는 증상이란다.

줄어가는 체력에 맞추어 슬슬 타는 수밖에 없다.
페달링 위주로 꾸준히 따라가며 쉬는 시간을 줄이고 다운힐에서 단축하는 방법이다.
이러니 누구에게 동반 라이딩을 같이 하자고 권유하기가 쉽지 않다.
민폐가 되기 때문이다.
여럿이 어울려 즐겁게 같이 타면 좋겠지만 마음에 부담으로 남는다.

4월중순부터 주말라이딩을 메리다코스에서 하기로 했다.
풀코스를 서너구간으로 나누어 혼자서 타기 시작했다.

대회 2주전, 하프코스를 유정헌군과 시간을 재며 돌았다. 탈만 했다.
대회 1주전, 금요일 저녁 10시 쯤 홍천알샵 게시판에 다음날 아침에 하프코스 답사 라이딩을 한다고 올렸다.
누군가 나랑 같이 하자고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늦은 밤 하천수샘이 같이 타자고 리플을 달았다.
이른 아침부터 둘이서 구간마다 소요시간을 재며 라이딩을 하였다.

전반부는 순조로왔다. 그러나 이배재 올라가는 막바지 끌바에서 퍼졌다.
손끝의 힘까지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졸음까지 몰려 왔다.
이배재 넘어 도로로 탈출하여 혼자서 끌며 타며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왜 실패했을까?
나름 생각해 보니 몇가지가 집힌다.

첫째, 지난 일주간 매일 라이딩하며 무리를 한 것 같다.
둘째, 실전처럼 한다고 의욕이 앞서 초반을 빡세게 탄 것 같다.
셋째, 날씨가 30도 전후로 더웠는데 초반에 많은 땀을 흘리고 물 보충이 적절히 되지 않은 것 같다. 탈수현상 같았다.
넷째, 점심은 식당에서 매식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너무 일러서 직동을 지나쳤고 이후 이배재 너머까지 산속이라 오후 2시에도 식사를 할 수 없었다. 행동식 준비가 소홀하였다.
다섯째, 양쪽 어깨 고장으로 멜바를 할 수 없고 끌바도 어렵다.

푹 쉬기로 했다. 라이딩 전략을 다시 다듬고 음료와 행동식 준비를 세심하게 했다.

3. 출전

풀코스 집합시간인 23:00에도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풀코스에 출전하는 알샵 선수들을 응원하러 율동공원으로 나갔다.
환한 불빛아래 쌀쌀한 빗속에서도 선수들의 흥분과 열정이 몸으로 전해온다.

우중의 코스 표지준비로 출발이 02:00로 연기된다는 발표를 듣고 풀코스 출발은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여러 상념으로 쉬이 들지 못한다.
06:30분 율동공원으로 가니 엊저녁에 비하여 주변이 썰렁하다.
선수도 수가 적지만 새벽 한 시 너머까지 붐비던 부품과 정비서비스 부스들마저 철수하였다.

간간히 한 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도 날이 밝으며 잦아든다.
밤새 내린 비로 풀코스 선수들의 어려움이 짐작된다.

08:00정각, 선도차를 앞세우고 하프를 출발하였다.
같이 참가한 유군과 하샘에게는 나와 같이 동반라이딩 할 생각 말고 능력껏 가라고 당부한다.
나는 속도보다 완주가 목표이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내 체력에 맞추어 페달링으로 가려한다.
제한 시간을 보아가며 가능한 막바지까지 내 체력의 80% 이하만 가동할 생각이다.  

나의 훈련장인 태재를 천천히 오른다.
문형산임도 초입에서 보온용 긴 저지를 벗어 배낭에 넣는다.
이제 시작이다.

드러난 나무뿌리로 단차가 심한 실키능선의 내리막을 내리지 않고 그대로 통과한다.
바퀴를 통한 느낌으로도 돌부리와 나무등걸의 형태를 떠 올릴만큼 친숙한 곳이다.
시작이 좋다.

강남300 팔각정에서 앞서 간 하샘을 만난다.
또 초반부터 쥐를 잡느라 어려움을 겪는 하프 48번 선수를 만난다.  
여기부터 이 두 사람과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결승선까지 달린다.

삼동연결도로 업힐을 하는 중 벌써 광남싱글을 돌아오는 선수들을 만난다.
손을 번쩍들고는 쏜살같이 내 달린다.
내가 저런 짐승급들과 같이 라이딩을 하다니 급 좌절이다.
고갯길에서 건너편에 있던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러나 내가 광남싱글을 돌아 같은 지점을 통과할 때 길 건너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오는 풀코스의 정운양샘을 만난다.
이젠 내가 손을 흔들어 주게 되니 한 시간 전의 좌절모드가 조금은 회복되는 듯하다.

직동마을의 팔각정에서 처음으로 쉰다. 젤을 꺼내어 입에 문다.
어느 팀의 지원조인지 남녀 두 분이 먼저 자리잡고 있다.
혼자 타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한다. 바나나를 내민다.
고맙다며 어느 팀이냐고 묻는다. 돈텔이라고 한다.
두 분은 작년에 280 완주하고 금년은 지원조로 봉사한단다.
금년 6월 양평의 280랠리에 관심이 많으시다.

직동임도 중간, 안개 바람이 휘도는 구비에서 혼자 도시락을 편다.
하샘이 지나치려다 내려선다. 하프 48번은 주춤하다 그냥 간다.
갈마치와 이배재의 업힐에서는 이미 작정한 대로 왼만하면 내려서 끌바로 한다.
아낀 에너지를 대신 다운힐에 쏟는다.  

이배재를 내려오는 도중 지원조의 이승상샘이 큰소리로 부르며 뛰어나온다.
옆에서 같이 달리기를 하며 예상보다 빨리 왔다고 칭찬이 대단하다.
평소에 나의 체력과 나이를 알고 있는데 내가 싱글랠리에 참가한다니 내심 걱정이 컷었나 보다.

다른 알샾참가자의 상황을 얘기해 준다.
고수 두 분이 잔차트러블과 컨디션 난조를 겪는단다.
280랠리와 이전의 오디랠리도 완주한 분들이다.
얼마나 아쉬웠을까?

도로에 내려서니 김솬샘과 김희균샘이 기다리고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고 한다.
동치미 국물에 전복죽을 한 컵 먹고 부지런히 일어선다.
하프일지언정 나라도 완주해야겠다는 각오를 새삼 다진다.

성남싱글로 진입하기 전, 338번 도로 고개길은 대다수 선수들이 가볍게 치고 올라간다.
나는 저속기어로 천천히 오른다.
무리하지말자고 마음속으로 나 자신에게 계속 다짐한다.

싱글진입로 안내를 맡은 젊은이가 저 앞에서 파이팅을 외친다.
손을 흔들어 답한다.
다시 이전 모드로 돌아가 땅만 보고 오른다.
갑자기 그 청년이  뛰어오더니 뒤에서 밀어준다.
이러면 안 되는데 속으로 뇌면서 그냥 둔다.
힘이 다한 논네로 비쳤나 보다.

성남싱글에서 남은 힘을 다 쏟는다.
토끼굴을 지나 여수동 싱글 초입에서 48번 선수를 다시 만난다.
이후 코스는 초행길이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라이딩을 한다.

성남인터체인지를 돌아 도로로 나오니 건너편 샛길로 달리는 선수들이 보인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막바지에 코스를 벗어났을까 안타깝다.

도로에 나오니 48번 선수는 나를 듯이 달린다.
한창 앞서가다 시야에서 사라질 만하면 기다려 준다. 이렇게 둘이서 골인 지점에 같이 들어 왔다.
지원팀과 먼저 들어온 선수들이 박수로 맞이한다.

4. 후기

마련된 뒷풀이 자리에 돌아와 보니 앞서 간 유군이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하니 신호가 가는 중에 유군이 나타난다.
자전거 트러블이 있어 지체됐단다.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을 자기는 보았단다.
왜 부르지 않았냐니까 능력껏 먼저가라고 했는데 젊은 자기가 나를 붙잡는게 어려웠다나.

내 또래에 속초 라이딩에 나서는 분이 있다. 철인경기에 참여하는 분도 있다.
대단히 강인한 분들의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의욕만으로 누구나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2006년 가을, 소리산과 오대산일원을 알샾팀과 나흘에 걸쳐 원 없이 탔었다.
내심 나만의 환갑기념 라이딩이었다.
그러나 내 체력의 한계를 확인한 라이딩이었다.
세상에는 대단한 고수들이 많다는 것을 몸소 겪은 라이딩이었다.

이제는 나이를 인정하고 자제하기로 했다.
이번 라이딩은 처음부터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다.
나 자신과의 시합으로 하였다.

그러나,
얼떨결에 사위를 앞지른 영감 꼴이 되었다.
어쩌면 유군이 자전거 트러블을 핑계로 나를 앞세웠는지도 모르겠다.

산에서 잔차를 타며 힘든 고비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은 더욱 반갑다.
저 사람은 왜 고난을 사서 할까?
저 사람도 나 만큼 힘들까?

산에서는  모든 것을 말없이 감싸안는 산을 닮게 되나보다.
누구나 라이딩의 동반자로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준다.
힘들어 하면 북돋아 주고 이끌어 준다.

시간이 관건인 대회에서,
이 사실을 다시 확인한 이번 메리다컵 라이딩 참가는 성공적이다.
약자가 된다는 것이,
나이 든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코스 안내와 운영에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은 주최 측에 감사드린다.
명단을 보니 하프 48번은 임종한님이다.

같이해서 즐거웠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