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때 공부하기 시작한 오페라

네이버에 있는 글인데 없어지기 전에 여기다 복사해 놓고 수시로 읽어볼려고 옮겼습니다.

연극이나 영화의 연기에 익숙한 관객에게 오페라 가수들의 동작은 상당히 어정쩡하거나 어설프게 보일 때가 많습니다. 모든 음역 중 가장 심한 경우가 테너입니다. 특히 베르디의 [아이다]나 푸치니의 [투란도트]처럼 드라마틱하고 스펙터클이 넘치는 작품에서 테너 가수들은 그리 많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죠. 최대한 큰 음량을 내면서 동시에 감각적인 음색을 만들어내려면 신체의 긴장을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 별로 연기를 하지 않는 남자주인공 때문에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작곡가이자 음악평론가였던 후고 볼프는 1885년 한 성악가의 무대 연기를 보고 이렇게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선량함을 우리에게 집요하게 확인시키려는 듯 양손을 계속 가슴에 올려놓고 있었다.” 이처럼 가슴에 손을 모으거나, 뭔가를 선언하듯 한 손을 위로 높이 쳐들거나, 가슴을 내밀고 양 팔을 펼쳐보이거나 하는 것들은 무대 위 테너들의 주요 동작들입니다.
오페라에서 테너는 대체로 혈기방자한 인물

남성 음역 중 가장 높은 음역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테노레(tenore. 영어로는 테너, 독일어와 프랑스어로는 테노르)’는 라틴어의 테네레(tenere)에서 유래한 단어로, ‘지속하다’라는 뜻입니다. 1250년부터 1500년 사이의 중세 및 르네상스의 폴리포니(다성음악)에서 ’테너‘라는 용어는 성악에서나 기악에서나 기본이 되고 중심이 되는 음역을 뜻했습니다. 테너를 기본으로 해서 소프라노나 베이스 등 다른 음역이 자리를 정했다는 뜻입니다.

오페라에서 테너 주인공은 대체로 ‘혈기방자’한 인물입니다. 나이가 젊고 신분이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며, 때로는 혈기가 지나쳐 경박한 처신이나 불같은 질투로 소프라노 주인공을 죽게 만드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것이 비극 오페라입니다.

대체로 테너 주인공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인생 경험이 풍부한 바리톤(아버지, 형, 연적) 때문에 사랑하는 연인(소프라노)을 잃거나 바리톤과 대적하다가 죽음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희극 오페라의 테너 주인공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희극에서는 테너라 해도 반드시 기품 있는 역할은 아닙니다. 무대 연기도 훨씬 역동적이고 음색도 기교도 가볍습니다.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가 열창하는 장면. 일반적으로 테너의 동작은
큰 음량을 내기 위해 단순화되어 있다.

테너의 음역과 음색에 따른 다양한 분류

테너의 ‘테시투라(tessitura. 무리 없이 편안하게 낼 수 있는 음역)’는 합창음악의 경우 ‘가운데 도(C4)’보다 한 옥타브 아래의 도(C3)부터 가운데 도를 지난 ‘라(A4)’, 오페라 전문가수의 경우 ’한 옥타브 아래 도(C3)‘부터 흔히 ‘하이C(high C)’로 불리는 ’두 옥타브 위의 도(C5)‘ 정도로 보고 있으며, 오페라 가수 중에는 아래로 한 음 반, 위로는 하이C 위의 ’파(F5)‘까지 부를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등의 벨칸토 오페라 분야에서 최고의 테너로 인정받고 있는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같은 가수를 특별히 고음역 확장이 가능한 예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테너 레퍼토리 중 C3보다 낮은 음을 내야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난쟁이 미메 역,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에 등장하는 헤로데 왕 같은 역할은 두 음 아래 ‘라(A2)’까지 내려갑니다. 반대로 테너를 ‘고문’하는 최고음 F5는 벨리니의 [청교도]에 쓰였지만, 실제 공연에서 이 음을 제대로 부를 수 있는 테너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수많은 오페라에는 몇 가지 유형의 남자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성격, 연령, 특성 등을 표현하는 데는 다양한 음역과 음색이 필요하겠지요. 그 음색에 따라 테너는 크게 리리코, 스핀토, 드라마티코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리리코 – [리골레토] 중 이 여자나, 저 여자나 Questa o Quella / 알프레도 크라우스  
스핀토 – [팔리아치] 중 의상을 입어라 Vesti La giubba / 플라시도 도밍고  
드라마티코 –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Nessun dorma / 벤 헤프너  

1. 테노레 레제로(tenore leggiero)

가장 가볍고 날렵한 음색의 테너를 가리킵니다. 레제로 테너는 고음과 저음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오르내리며 콜로라투라 기교를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합니다. 테너의 최고음이라고 할 수 있는 높은 ‘레(D5)’나 ‘파(F5)’까지 낼 수 있는 테너들은 대개 이 범주에 속합니다. 대표적인 예는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의 주인공 알마비바 백작, 로시니 [신데렐라]의 라미로 왕자, 모차르트 [후궁탈출]의 벨몬테, 도니체티 [돈 파스콸레]의 에르네스토, 도니체티 [연대의 딸]의 토니오 등입니다. 거의 희극 오페라의 주인공들이죠? 페루초 탈리아비니, 티토 스키파, 루이지 알바,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로렌스 브라운리, 윌리엄 마테우치, 리처드 크로프트 등이 대표 가수들입니다.

2. 테노레 리리코 (tenore lirico)

밝고 따뜻하고 윤기있는 음색을 지닌 테너로, 사랑에 빠진 젊고 순수한 남자 주인공 역에 어울립니다. 레제로보다는 다소 중량감이 있지만 드라마틱 테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음색이죠. 음역은 낮은 ‘도(C3)’부터 높은 ‘레(D5)’ 정도로,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리골레토]의 만토바 공작, 벨리니 [청교도]의 아르투로,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에드가르도, 구노 [파우스트]의 파우스트, 차이코프스키 [예브게니 오네긴]의 렌스키, 푸치니 [나비부인]의 핑커톤, [라 보엠]의 로돌포, 마스네 [베르테르]의 베르테르 등, 잘 알려진 인기 오페라의 남자 주인공은 대개 리리코입니다. 유시 비욜링, 주세페 디 스테파노, 베냐비노 질리, 프리츠 분덜리히, 니콜라이 게다 같은 전설적인 테너들을 비롯해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 롤란도 비야손(빌라존), 라몬 바르가스 같은 테너가 모두 리리코를 대표하는 가수들이죠.

3. 테노레 스핀토 (tenore spinto)

‘찌르다’라는 단어 ‘스핀토’의 의미처럼 강렬하게 밀어붙이는 젊고 활기찬 목소리의 테너입니다. 리릭 테너의 고음과 밝은 음색을 사용하면서도 리릭보다 중량감이 있기 때문에 ‘리리코-드라마티코’라고도 부릅니다.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의 셰니에, 레온카발로 [팔리아치]의 카니오,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투리두, 푸치니 [마농 레스코]의 데 그리외, 비제 [카르멘]의 돈 호세,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의 만리코, 베버 [마탄의 사수]의 막스 등이 대표적인 스핀토 테너입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이탈리아 ‘베리스모(verismo)’ 오페라의 주인공들이 대개 이 범주에 속하는군요. 프랑코 코렐리, 리처드 터커, 플라시도 도밍고, 주세페 자코미니, 요나스 카우프만 등을 스핀토 테너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4. 테노레 드라마티코 (tenore drammatico)

풍부한 성량, 풍요로운 음색, 선명한 감정 표현을 특징으로 해 가장 드라마틱한 가창을 들려주는 테너입니다. 음높이는 아래 도에서 두 옥타브 높은 도까지(C3-C5)이며, 힘과 박력이 넘치는 소리로 관객을 압도하는 ‘영웅 테너(tenore di forza)’와도 혼용됩니다. 또 일반적인 드라마틱 테너보다 더욱 강렬한 느낌을 주는 ‘테노레 스핀토 드라마티코’도 있습니다. 푸치니 [투란도트]의 칼라프 왕자, 베르디 [아이다]의 라다메스, [오텔로]의 주인공 오텔로, 베토벤 [피델리오]의 플로레스탄, 푸치니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생상스의 [삼손과 델릴라] 중 삼손 등이 전형적인 드라마틱 테너 배역에 속합니다.

  베르디 [아이다] 중 라다메스를 연기하고 있는 파바로티.
파바로티는 원래 리리코지만 드라마티코 역할도 훌륭하게 소화했다.

독일어권에서는 ‘헬덴테노어(Heldentenor. 영웅 테너라는 뜻)’라는 단어를 써서, 신화 이야기의 영웅 주인공인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의 지크프리트, [탄호이저],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의 타이틀 롤 같은 남자 주인공을 칭합니다. 대표적인 가수로는 엔리코 카루소, 마리오 델 모나코, 존 비커스 같은 전설의 명가수들, 벤 헤프너, 페터 자이페르트, 지크프리트 예루살렘,르네 콜로 등의 바그너 전문가수 등이 있습니다.

5. 테노레 부포 (tenore buffo)

무대 위를 종횡무진 뛰어다닐 수 있는 연기력과 독특한 음색을 만들어내는 재능이 필요한 테너입니다. 희극적인 역할을 맡기 때문에 ‘코믹 테너’라고도 부릅니다. 여기서는 남성의 높은 음역이 주로 우스꽝스러운 효과를 내는 데 이용됩니다.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의 돈 바실리오, [마술피리]의 모노스타토스, 베르디의 희극오페라 [팔스타프]의 하인 바르돌프, 레하르 [메리 위도우]의 주인공 다닐로 역 등이 여기 속합니다.

글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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